이중하선생묘 지도 이미지

이중하선생묘 66명이 열람하였으며, 0개의 리뷰가 있습니다.

향토문화유적명
이중하선생묘
문화유적지정번호
양평군 향토유적 제41호
향토문화유적구분
기념물
향토문화유적종류
옛무덤
소재지지번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창대리 산82-1
지정일자
2007-01-31
소유주체구분
사유
소유자명
김*근
규모
6
조성시대
조선
향토문화유적소개
본관 전주, 자 후경, 호 규당 ·탄재,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85년 안변부사로서 토문감계사가 되어 청나라 차관 가원계와 백두산정계비를 답사, 국경분쟁의 해소에 노력했으나 양국의 견해차로 실패했다. 그 후 덕원부사를 거쳐 1890년 참의교섭통상사무, 1892년 암행어사로 충청도에 나갔다가, 1894년 협판교섭통상사무를 거쳐 공조참의가 되었다. 석물로는 1단의 계체석 아래 중앙에 상석, 향로석, 혼유석 등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석물은 총 6점으로 수량이 타묘에 비해 적은 점이 있다
관리기관전화번호
031-770-3001
관리기관명
김*근
데이터기준일자
2023-05-24
제공기관코드
4,170,000
제공기관명
경기도 양평군

블로그 리뷰

  • 이중하선생묘 | 계룡산 동학사의 숙모전(동학삼사)과 신원사의 중악단 답사

    김응현 선생의 글씨다. 뒤 위 동학서원 터 이곳에 동학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순조 때인 1830년에 세워졌으나 6년 뒤 헌종 임금 때 자체 내분으로 철폐되었다고 한다. ​ 뿌리가 큰 바위를 보듬고 있다 폭포 단풍이 곱다 기이한 형상의 나무 관음암 길상암 미타암 숙모전에 도착하였다. 입구 동학삼사 안내 숙모전 숙모전...

    빛돌의 하루(2024-10-26 14:09:00)

  • 이중하선생묘 | 서백의 사찰이야기123 - 역사적인 자산인 중악단(산신제단)이 있는 신원사

    아내가 묘 옆에 심어 준다는 속설이 있는 나무이다. 한여름 무더운 날에 향기도 없이 100일 동안 질리게 피어 있으니 죽은 자라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리고 배롱나무는 나무줄기의 매끄러움 때문에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옛날 대갓집 안채에는 금기시되는 수목이였다. 디딜방아가 남녀의 교합을 연상...

    서백의 사찰이야기(2015-01-27 23:31:21)

  • 이중하선생묘 | 2019.09.21(토) 사진으로 보는 사천 봉명산 & 하동 코스모스축제 사진일기

    부친의 묘를 쓰면 가문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절에 사람을 보내 이장준비를 지시하면서 다솔사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수도승인 봉암스님을 중심으로...정기적으로 명과 청에 보내던 사신을 말한다. 당시 감계사 대표는 이중하 공조참의가 맡았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분...

    Don't worry, be happy(2019-09-26 12:45:14)

  • 이중하선생묘 | 다솔사[多率寺],아름다운 솔숲과 편백나무길 있는 봉명산 多率寺에서 茶香에 젖다

    부친의 묘를 쓰면 가문(家門)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솔사에 사람을 보내 이장(移葬) 준비를 지시하면서 다솔사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수도승인 봉암...청나라에 보내던 사신을 말한다. 당시 토문감계사 대표는 이중하(李重夏)이었는데,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인물...

    바다늑대 FORCE(2013-12-04 15:46:48)

  • 이중하선생묘 | 양평의 歷史와 文化 총론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혜보(惠甫)·혜풍(惠風), 호는 영재(泠齋)·영암(泠庵)·고운당(古芸堂). 진사 관(璭)의 아들이다. 영조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시문에 뛰어난 재질이 인정되어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로 들어가 활약이 컸으며, 그 뒤 제천군수, 포천군수, 양근군수 등을...

    맥결의 이상향(utopia)(2022-10-03 11:17:00)

  • 이중하선생묘 | 목숨 걸고 간도 지킨 이중하를 아십니까?

    이중하 선생의 행적을 발굴했다. 두 장의 바랜 사진을 통해 100년 동안 잠들었던 그의 당당한 위풍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증손자인 규영(78)-규청(70)씨 형제는 집안에서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이중하의 모습을 공개했다. 관복을 입고 앉은 이중하의 사진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젊 은 시절과 중년 시절에...

    萬水(2010-08-16 15:18:00)

  • 이중하선생묘 | 백두산 전체가 우리땅

    조선 후기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 지역이 무인지대였기 때문에 영토분쟁이 일어났다는 이 자료의 해석은 의미가 깊다”면서 “실제로 당시 만주 지역은 조선과 청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텅 빈 지역이었으며 조선인들이 먼저 이곳에 땅을 개척했다는 것이 간도영유권 주장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백두산 영유권 분쟁...

    에버그린(2015-10-15 13:49:00)

일별 방문 통계

월별 방문 통계

날씨

리뷰 (0)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