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대학자이며 문신인 양성지(1415∼1482) 선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우이다 선생의 자는 순부, 호는 눌재, 송파 본관은 남원, 구주의 아들이다. 세종 23년(1441) 식년문과에 급제한 이후 훈구파의 중진으로 집현전에 들어가 고려사 개찬에 참여했고 팔도지리지 동국지도 등을 찬진했다. 세조9년(1463) 홍문관의 설치를 건의하여 역대 서적을 보관케 했고 10조의 상소문을 올려 학문 발전을 꾀하도록 했다. 예종1년(1469) 지중추부사, 홍문관제학, 지춘추관사를 겸직 세조실록,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성종2년(1471) 좌리공신3등으로 남원군에 봉해진 후 대사헌, 성종12년(1481) 홍문관 대제학으로 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했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일찍이 정조15년(1791) 정조께서 규장각을 설치하고 그 제안자인 문양공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한 서원건립을 하명, 출생지에 월곡서원이 창건되었고 만년을 지낸 통진에 서원 건립을 주선했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1973년 양촌면 대포리에 있는 선생의 묘소밑에 사우를 창건하였으며 그곳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