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승은 남장사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장승(石長丞 )이다. 남장사는 832년(興德王 7)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1186년(명종 16)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그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창이 이어져 현재에까지 전하고 있다. 이곳에는 관음선원목각탱(觀音禪院木刻幀 :보물 제923호)과 보광전목각탱(普光殿木刻幀 : 보물 제922호), 毗盧遮那鐵佛坐像 등이 전해지고 있다. 또 극락보전의 현판에 1856년(哲宗 7)에 해당하는 함풍(咸豊)의 연호가 기록되어 있어 이 시기에 사찰이 융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승은 마을 수호신, 이정표의 기능을 가진 민속신앙 문화재이며 사찰입구에 세워 잡귀의 출입을 막고 사찰 성역내의 금지된 규제와 풍수비보를 지켜주는 수문과 호법의 신장상이라 한다. 그 복부에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 하였고 임진구월립(壬辰九月立)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는데 임진은 극락보전의 현판기록과 대조하여 1832년(순조 32) 혹은 1892년(고종 29) 중의 하나라 추측된다. 처음부터 큰 바위를 다듬어 장승을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형태의 바위를 골라 소박하게 손으로 다듬었다. 보통은 왕방울 같은 눈망울은 둥글게 하는 것이나 이 장승은 위로 치켜뜬 모양이며 콧날도 없이 펑퍼짐한 주먹코는 매우 크게 되어 있다. 입은 야무지게 다물고 있지만 형식적인 표현이라도 송곳니의 표시가 있고 수염은 마치 옷주름을 다듬은 듯하게 형태만 표현하였다. 머리는 상투라고는 보기 어려운 마치 불상의 육계와도 흡사하게 되어 있으며 귀는 표현하기는 했지만 모양만 나타나 잘 알아보기 힘들다. 얼굴전체는 바위 생긴대로 다듬어서 한쪽으로 일그러져 있다. 다른 석장승과는 달리 균형도 잘 맞지 않고 구체화된 표현도 없으나 원초적인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 높이는 1.86m로 민간신앙과 불교가 어우러진 신앙예술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