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석조귀부가 원래는 무양동 1-1번지(비석거리)에 있었으나 현 위치로 이건 하였지만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조각이 온화한 감을 주며 윤곽은 둥글고 높은 편이다. 귀갑문과 배면상에 연화좌와 장방형의 비좌만을 조각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전기에 유행했던 수법으로 보인다. 이 석조귀부는 본디 무양동 1-1번지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놓았다. 조선기의 것으로는 상태가 완전하며 거귀부(巨龜趺)다. 비석과 이수(이首)는 없어졌으나 화강석에 조각한 귀부로서 윤곽은 둥글고 높은 편이다. 표현이 온화한 편이며, 귀갑문(龜甲文)이나 절육표현(絶肉表現)은 없고 배면상(背面上)에 연화좌 표현은 조선 태조 헌릉비나 영암(靈岩) 도갑사(道岬寺) 도선국사비, 삼전도비(三田渡碑) 등의 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수법을 보이고 있다. 전장은 190cm, 최대 폭은 160cm, 전고 990cm, 비좌장 124cm, 비좌폭 57cm 등으로 원래는 상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 비석거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