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로 직봉 대부분의 봉수는 왜구가 침투하는 해로 감시에 탁월한 위치에 입지하고 있었으며, 수사(水使)의 관리 하에 있는 요새(要塞) 기능에 중점을 둔 노선이었다. 이는 제2로 직봉이 육군인 병사(兵使)의 관리 하에 급보(急報)가 주 기능으로 운영된 것과 차별화된 점이며, 향후 노선별 봉수군의 편제, 봉수 운영방식, 봉수의 구조형식 및 특성 등에 관한 비교 자료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봉수유적은 조선의 중요 군사,통신시설로서 그 시대의 군사, 통신 제도를 현저하게 보여주며 이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경국대전, 각종 관찬 사찬 지리지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부터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봉수유적은 이러한 기록에 부합하는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국에서 확인되고 있어 그 역사성과 기록과의 일체성이 탁월하다. 또한 봉수유적은 최단시간에 변경의 상황을 중앙에 이르게 하는 통신수단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노선을 확정짓기 위해서는 북방을 개척하면서 확보한 지리적 지식과 연변에 침구하는 왜구를 방어하면서 습득한 지리적 지식의 결정체가 봉수 노선의 결정에 반영되어야 하였으며 그 결과물이 5개의 봉수 노선으로서 이는 조선시대 지리 정보에 대한 보고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