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탱화는 화면이 약간 어둡게 변질되었지만 상겸파 특유의 화풍인 사실적이면서도 단아한 인물묘사와 세장한 신체표현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18세기 후반의 불화 가운데서도 작품성이 뛰어나고, 화면은 아미타불 중심으로 8대보살, 사천왕, 10대 제자가 좌우로 자리하도록 구성하였다. 탱화 조성(造成)에 참여한 화승은 상겸(尙謙), 창은, 성윤(性玧), 쾌전(快全), 법성(法成), 유홍(有弘) 등이며, 상겸(尙謙)을 주축으로 하는 상겸파의 초기의 작품으로 경기도 화파가 경북지역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상겸파는 이후 이 탱화를 조성한 인연으로 남장사의 괘불과 십육나한탱을 제작하였다. 황령사는 고려때 몽고군 차라대(車羅大)가 침공해 왔을때 이 곳의 승려 홍지(洪之)가 민병을 거느리고 모동면 백화산성으로 유인하여 승첩을 거둔 스님을 배출하였고, 임진왜란때에는 상주지역에서 최초로 창의진(昌義陣)을 조직하여 창의한 의병들이 본거지로 사용한 호국사찰이다. 그로 인하여 사찰이 소실되는 참화를 당했고 그 후 1966년 주지 상호화상에 의하여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