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향토 문화 유적 지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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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 : 6 / 2025-01-02 03:00:08
許詡)·허조(許慥)·박계우(朴季愚)·이보흠(李甫欽)·정효전(鄭孝全) 등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운동의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들의 위패를 함께 안치하여 제사를...신도비와 마주보는 위치에 육각의 사육신비가 세워졌다. 1978년에는 묘역을 크게 넓히고 의절사(義節祠)·불이문(不二門)·홍살문·비각(碑閣) 등을 새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2022-02-05 22:22:41)
죽은 박팽년,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은 유성원과 허조(이개의 매부로, 세종 대 문신 허조와는 동명이인입니다)의 시체가 거열된 후 전국 팔도에 나눠 전시...그들은 그렇게 주막 하나 없는 곳으로 갔습니다. 노량진 사육신 묘역 앞에 소개한 절명시의 작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 시가 성삼문의 작품...
까마귀마을(2022-05-14 21:38:22)
역임. 허조(操): 동주사공의 증손자로 과거 급제 후 전라안렴사를 역임. 허유(儒): 고려 도제고 부사를 지낸 손자로, 그의 아들 허염(濂)은 사헌부 규정을 역임...17세 허탁(倬)의 묘를 발견한 후, 후손들이 재궁동에 제각(祭閣)을 짓고 묘역을 보존했다. 1989년에는 금곡리로 이장하여 동주사공파 묘역을 조성했다...
띵골라인(2025-01-20 09:39:59)
미쳐 허조가 듣고 탄식하기를, "이런 어진 사람을 오직 술이 해쳤다." 하였다. 치부(致賻)하기를 명하였다. 아들 다섯이 있는데, 신맹주(申孟舟)·신중주(申仲舟)·신숙주(申叔舟)·신송주(申松舟)·신말주(申末舟)이었다. 아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이 있어서일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바람과 구름, 그리고 문학(2026-02-14 20:51:00)
사당은 묘역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이곳이다. 원래 사당은 마을에 있었으나 조선 후기 즈음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한다. 사당은 맞배지붕에 3칸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가운데 방에는 대군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양쪽 방에는 제기와 제복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건물은 1967년 1월에 전면적인 보수가 이루어...
바위솔의 쉼터(2025-02-17 08:09:00)
보면 묘역과 사당 설명에 김문기까지 포함한 일곱 분이 함께 언급됩니다. 즉, 역사적 사건의 실제 연루 범위와 후대에 굳어진 ‘사육신’ 명칭은 완전히 같은 범위가 아닙니다. 이런 차이를 알고 보면 사육신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들이 왜 단종 복위 운동에 나섰는지도 봐야 합니다. 배경은 단순...
세상의 모든정보(2026-03-09 05:41:00)
조선 후기 양식을 취하고 있다. 높이는 62cm, 어깨 너비 28cm, 무릎 너비 39cm 정도의 작은 불상으로 몸통에 비해 얼굴이 좀 크다. 표정은 좀 우울해 보이며 나발(螺髮) 스타일의 머리 꼭대기에는 무견정상(無見頂相)이 두툼히 솟아있다. 두 눈은 가늘고 코는 오똑하며 붉은 입술은 다물고 있는데 볼에 살이 많아 보인다...
도봉산고양이의 여행이야기(2022-03-07 06:57:06)
선인의 묘역, 전시체험관, 독공실, 국악인 참배시설 등이 있어 우리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체험해 볼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의 운영이 각각 다르므로 시립국악단이나 국악의 성지 사무실에 연락 하여 예약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남원20경 5경 흥부마을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잡동사니(2023-10-03 22:09:18)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의 가묘가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놓고 일부 학자들 사이에 찬반 양론이 벌어져 신문 지상에 그들의 논설이 게재되기도 하였다. 사육신의 진실 저자 김진우 출판 통천문화사 발매 2011.12.05.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김문기(金文基 1399년 ~ 1456년)는 삼중신의 한 사람인데...
깔따마구 님의 마음공부(2023-11-28 18:27:00)
글엔 묘역이 고스란히 남아 찾아온 이의 회한을 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신도비만 남아 그의 영혼을 돌본다. 글씨를 쓴 이가 순조 임금의 장인이자,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조로 불리는 노론 시파의 영수 김조순이라니 일별(一瞥)할 만은 하다. 마당바위로 향하는 길가 배나무밭엔 배꽃이 활짝 폈다. 살구꽃인지...
우리 산하 이야기(2014-04-20 2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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