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시 정일부인 윤씨는 왜군의 추적으로부터 병환 중이던 정일 선생을 숲에 피신시키고 자신은 도암담에 몸을 던져 죽으니 종 막개도 그녀를 따라 죽었다. 그 후 임진년 겨울 왜군의 포로가 된 정일 선생도 왜군에 항거하여 죽음으로써 충절을 지켰다. 정진사의 종 계화는 3살난 정진사의 아들을 왜군으로부터 살려내어 후대를 잇게 했다. 그 뒤 1635(인조13)년에 정진사에게 지평이 증직되고 정려를 내렸으며 부인 윤씨의 정려는 1707(숙종33)년에 내려졌다. 이 정려는 충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부부의 정려이고, 여종들 또한 주인을 따르는 의리로 비석이 서 있다는 점은 다른 정려와 달라 교육적, 사회적 가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