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향토 문화 유적 지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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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 : 6 / 2025-01-02 03:00:08
가족 묘역으로 취급됩니다. ※ 참고: 폐위된 왕(연산군, 광해군)의 무덤은 '묘'로 분류됩니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 외에 왕실가족의 무덤인 원...일반 후궁 및 폐위된 왕들의 무덤을 가리킨다. 원묘제가 확립된 것은 조선 후기로, 그 이전에는 원과 묘를 모두 묘로 불렀다. 원(園)은 반정으로 왕위에...
유럽(미국.일본.뉴질랜드외)자동차여행86lcgood(2Fe(2026-03-15 15:28:00)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가이다. 본관은 신안동(新安東), 자(字)는 사원(士源), 호(號)는 풍고(楓皐),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종묘의 정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이력 영의정을 지낸 충헌공(忠獻公) 김창집(金昌集)의 현손이며 서흥부사(瑞興府使) 김이중(金履中)의 아들이다. 노론이었으나 시파에...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TSTORY BLOG) 백만블로그.(2026-04-11 10:21:56)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여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현재는 동문이 있던 자리와 남문이 있던 터가 남아있다. 이 성은 성의 일부가 한강변에 나와있어 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 매우 좋은 요새이다. https://youtu.be/0gjHUT6zamY?si=57w-Pa1XTfvvfV...
맘대로투어(2026-02-19 12:59:00)
문중 묘역인 듯 한 장소 무시하고 포장된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포장 길이 끝나는 부분에서 원호 유허비각과 정자인 관란정이 보인다. 유허비각의 앞쪽에는 2014년에 새롭게 세워진 관란원호선생유고비(觀瀾元昊先生遺稿碑)가 자리잡고 있는데, 비에는 원호가 지은 <탄세사(嘆世詞)>라는 제목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소소한 일상과 여행_길아래 그곳(2024-09-06 05:50:00)
망명지였다. 원호(元浩)와 같은 인물은 단종이 유배된 사내평에 은거하며 끝까지 절개를 지켰는데, 밀양 박씨 목천현감공파의 영월 정착 역시 이러한 집단적 은거와 충절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10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두산리 234번지: 집성촌의 형성 밀양 박씨 목천현감공파가 최종적으로 터를 잡은 곳은...
아름다운인생지금이순간부터(2026-02-11 17:29:00)
시호와 원호, 궁호를 내린 정조의 처사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궁과 원은 세자 와 세자빈 그리고 왕을 낳은 후궁들의 묘호로 예법에 맞지않았다. 이러한 대우는 정조에 총애받고있는 홍국영의 위세 때문이였다. 홍국영은 여동생 원빈 홍씨가 갑자기 죽은 이유로 효의왕후가 여동생을 독살했다고 의심하며, 효의왕후...
서울에서 시집온 부산댁의 이야기(2025-08-21 10:16:00)
지나 위와 같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봉산 지씨의 문중 묘역인 듯한 공간이 등장하고, 봉산 지씨 묘역을 지나 조금만 더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원호유허비 및 관란정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원호유허비각의 모습입니다. 원호유허비는 조선 후기 영 · 정조 시절의 대학자였던 홍양호(洪良浩...
우리말의 향기는 흩날리고~♬(2024-04-24 11:40:00)
왕자의 묘역 터임을 밝히고 있다. 1967년 8월 당시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개인소장품으로써 육군사관학교에 기증되었으며 이후 1980년 6월 11일 서울시...변해왔는지, 어떤 공간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엔 묘자리였는데 1940년에는 토지구획을 통해 영단주택지로 조성되었고...
이경민(2025-01-30 23:41:56)
장군 묘역, 부인 원주 이씨와 함께 잠들어 있다. 적의 앞 대열이 퇴각하니 뒤에 있던 자들이 놀라고 소란스러워지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았다. 이에 고을 군병이 힘을 모아 공격 하니 함성이 온 산에 진동하였다. 도라도 등 68명을 베고, 죽인 자가 거의 절반이나 되었 다. 이로부터 적은 예기가 꺾여 감히 다시 공...
아들아 ! 밧줄을 잡아라(2025-07-08 10:01:00)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 남효온도 있었다. 충과 효를 중시했던 조선은 역사를 바로하기 위해 노력하여 정조대 이르러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키고 목숨을 바쳤던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단종 장릉에 위패를 모시고 제단을 설치하였다.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 안평대군은 세종의 3남으로 소헌왕후 심...
istamping님의 블로그(2025-03-04 0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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